“수원 냉장고 두 영아 시신 유기 친모, 살인죄 적용해야”
영아살해 최대 징역 10년이지만 절반이 집행유예로 풀려나
형법, 영아살해 감경 사유로 ‘치욕 은폐’ ‘양육 불가능’ 적시
다양한 사회안전망이 확충된 현시대와 맞지 않아
우먼타임스 = 한기봉 기자
형법 제251조는 ‘영아살해죄’다. 본문은 이렇다.
“직계존속이 치욕을 은폐하기 위하거나 양육할 수 없음을 예상하거나 특히 참작할 만한 동기로 인하여 분만 중 또는 분만 직후의 영아를 살해한 때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아이는 부모의 소유가 아니다. 영아살해도 살인이다. 형법에서 살인죄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다. 존속살해죄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이다. ‘정인이법’ 시행으로 아동학대치사죄는 최저형이 7년으로 늘어났다.
영아살해죄의 형량이 턱없이 낮은 것이다. 게다가 재판 과정에서 절반 정도의 가해자는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우리 사회를 충격에 몰아넣은 ‘수원 냉장고 두 영아 시신 유기 사건’의 30대 친모도 영아살해죄가 적용돼 구속됐다. 그는 지난 2년 동안 자기가 낳은 두 명의 아이를 출산 후 바로 살해하고 하루에도 수십 번 문을 열고 닫았을 집 냉장고에 시신을 넣어 은폐했다.
범행은 ‘생활고’ 때문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미 남편과의 사이에 12살 딸, 10살 아들, 8살 딸 등 3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다. 부부는 수원의 한 콜센터 직원이다.
감사원이 보건복지부를 감사하는 과정에서 출산 기록이 있음에도 출생신고가 없는 것을 확인하면서 범행이 드러났다.
아직 재판은 시작되지 않았다. 그런데 친모에게 무거운 살인 혐의 대신 형 감경 사유가 있는 영아살해죄를 적용한 것이 과연 적절한가에 대한 비판 여론이 잇따르고 있다. 또 이번 사건을 계기로 1953년 한국전쟁 직후 만든 형법상의 영아살해죄를 수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같은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아동학대살해죄는 살인보다도 최저 형량이 높다. 그런데 영아살해죄는 형량이 낮은데다 다양한 정상참작 사유를 들어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경우가 절반 가까이나 되는 것이다.
◇관대한 법원 판결
동아일보가 최근 5년(2018~2023년) 동안 영아살해·살해미수 관련 1심 판결문 24건을 전수 분석해 25일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딱 절반인 12건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실형을 선고받은 나머지 12건도 형량은 높지 않다. 최대 징역 10년이 가능하지만 선고된 형량은 △징역 2년 이하 8건 △징역 3년 3건 △징역 5년 1건이었다.
가장 무거운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사건은 친모가 2019년 화장실에서 출산한 후 신생아를 방치해 숨지게 하고 시신을 깡통 안에 넣은 채 소각한 범행이다.
이 신문 보도에 따르면 재판부는 감형 이유로 ‘잘못 인정과 반성’(20건)을 가장 많이 들었다. 또 ‘출산 직후 정신적 불안으로 정상적 판단의 어려움’(14건), ‘전과 없음’(12건), ‘경제적 어려움과 불우한 가정환경’(6건)도 참작했다.
24건 중 미혼 상태에서의 범행은 22건(92%), 기혼 상태는 2건(8%)이었다. 범인은 친모가 22건, 친모와 친부가 함께인 경우가 2건이었다. 범행 장소는 화장실이 많았고, 범행 동기로는 “경제적으로 양육할 형편이 안 됐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 한겨레신문이 대법원 판결 인터넷 열람 제도를 통해 2021년 6월 25일부터 2년 동안 영아살해 확정 판결문 10건을 확인해 25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가해자 모두 징역 3년 이하를 선고받았고, 그 가운데 절반인 5명은 집행유예였다.
◇실제 유사 사례들
이번 사건과 유사하게 두 아이의 시신을 수년째 냉장고에 보관한 2017년 부산 영아살해 사건 피의자 역시 영아살해죄와 시체유기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당시 친모는 경찰 조사에서 “친부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동거남이 알게 되면 헤어지자고 할까봐 출산과 시신 유기 사실을 숨겼다”고 진술했다. 정상이 참작된 것이다.
2006년에는 서울 서래마을에 살던 한 프랑스 여성(당시 37세)이 2002년과 2003년 자신이 낳은 아이 2명을 살해해 자기 집 냉동고에 보관해오다가 적발됐다. 유명한 서래마을 영아살해 사건이다. 그 여성은 프랑스 법원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술집에서 남성을 만난 뒤 임신한 19세 여성은 가족에게 임신 사실을 숨긴 채 집에서 출산하고 영아를 살해해 주검을 유기했다. 법원은 혼날까 봐 두려움에 저지른 범행이라는 점을 참작해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친아빠가 확인되지 않은 아이를 낳자마자 살해하고 주검을 인근 야산에 유기한 27살 여성에겐 징역 3년이 선고됐다. 법원은 남자친구의 아이인데도 아니라고 생각해 살해함으로써 죄책감과 상처가 상당하다는 사정을 고려했다.
최고 형량인 10년에 가까운 징역형이 선고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영아살해 피고인은 대체로 사회 정서보다 훨씬 낮은 형량을 선고받아온 것이다. 집행유예는 판사가 ‘징역 3년 이하’를 선고할 때만 가능하다. 영아살해는 ‘징역 10년 이하’로 최고 형량만 규정돼 있어 집행유예 선고 가능성이 높다.
◇달라진 시대 상황과 사회안전망을 고려해야
형법의 영아살해죄는 1953년 형법이 제정될 당시 만들어진 이후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았다.
당시 감경 조항이 법조문에 들어간 것은 한국전쟁이 막 끝난 직후여서 치안도 불안하고, 피임 수단도 열악해서 원치 않은 임신도 매우 많았기 때문이다.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들어 아이를 키우기도 어려웠다. 미혼모나 사생아에 대한 사회적 보장 제도도 없었다.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낙인이 찍히던 시대였다. 아동인권과 생명에 대한 경시 풍조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와 상황이 다르다. 그래서 영아살해죄를 다른 살인에 비해 특별히 감경하는 조항이 우리 형법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사회안전망이 보강된 현시점에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공감대를 얻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혼자 아이를 키워도 국가에서 지원해 주는 복지제도가 있다. 가정위탁이나 공개입양 등 제도 역시 마련돼 있다. 그만큼 양육의 부담감이 줄어든 것이다. 범죄 등으로 인한 원치 않은 임신, 장애 및 전염성 질환이 확인된 경우 등 모자보건법 14조가 인정하는 사유에 대해선 합법적 낙태 시술이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존속 살해에 비해 영아 살해는 한참 낮은 형량으로 다뤄지고 있는데 오히려 반대로 되어야 맞다고 지적한다. 재판부가 어려움을 호소하는 피고인에 공감하고 감형할 게 아니라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선택을 하지 못한 것을 엄하게 판단하는 쪽으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제도적으로는 병원에서 익명으로 출산하고 아이를 지방자치단체 등에 인도할 수 있게 하는 보호출산제가 도입된다면 막다른 상황에서 자신이 낳은 아이를 숨지게 하는 일을 막을 수도 있다.
이번 수원 냉장고 영아살해 사건은 일반적인 영아살해와는 다르다는 지적이 많다. 친모는 이미 남편과의 사이에 3남매를 기르던 중이었다. 부부 모두 직업이 있고 임신 사실을 숨길 이유도 찾기 어려운데 연달아 두 아이를 살해했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살인죄로 다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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